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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할 만하다, 그림쟁이
언덕배기를 오르는 동안 보이는 쓰레기를 주워들고, 작업실 문을 연다. 외투를 벗어 한편에 두고 커피를 내린다. 오래된 공간이라 추위가 상당해서 얼마 전까지도 커피 내리는 동안 기름 넣고 불붙여 석유 난로를 틀었다. 한파가 엄청났던 지난겨울 너무 추울 땐, 직접 톱질해 액자를 만들며 몸에 열을 내고서야 작업할 수 있었다. 그래도 좋다. 따르는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볕이 잘 드는 창이 있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노래가 있고, 작업 테이블도 있고 작으나마 그림을 걸 벽도 있으니 이만하면 족하다. 행복하다. 바람이 있다면 이런 하루하루를 오래 지속하는 것뿐. 작가로서의 장기전을 위해 오늘도 성실한 매일을 일구는 작가 류승옥을 이화동 벽화마을 초입,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녀가 힘들어 방황하던 시간을 몸소 부딪쳐 얻은 한 가지는 뭐든 한 번에 되는 게 없다는 거다. 인생도 작업도 그녀가 좋아하는 마라톤처럼 내 몸을 직접 움직여 만든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이어지고 누적되어 이뤄진다는 것. 큰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인생은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말처럼 하찮은 일이 쌓여 이루어지는 걸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하찮다고 생각하는 작은 일상들은 더 이상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녀는 확신한다. 그래서 허황한 것을 쫓기보다 현실에 두 다리를 단단히 올려놓고 매일의 생활에 충실히 하고자 한다. 치열한 하루와는 다르다. 그냥 묵묵히 자기 페이스대로 하루를 사는 거다. 잠깐하고 그만둘 일이 아니니까 그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매일 속에서 갈고닦는다. 체력이 없으면 작업할 수 없으니 걷고 뛰며 몸을 만들고, 움직이며 본 것들을 그림으로 그린다. 간단한 드로잉이든 뭐든 괜찮으니 스스로 주는 숙제 ‘매일 그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빼먹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작업실을 나서기 전엔 팔레트를 깨끗이 닦고 도구를 정리하며 내일의 작업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꽤 중요한 일과. 자연스럽게 습관화된 이런 생활들이 하루가 되고 또 한 주가 되고, 한 달에서 일 년으로 쌓이길 바란다. 그렇게 얻은 근력과 내공으로 덜 지치고 덜 흔들리며 더 오래 작업할 수 있을 테니까. 작은 선으로 성실하게 채운 여러 겹의 레이어. 그 과정 속 정성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기 위해 오늘도 그녀는 꾸준히 깨어 움직이는 충실한 하루를 지내고 있다.
최근 만난 작가분들 중 가장 개방형의 작업실이다.
15년 정도 혼자 집중해 그림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을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 보니 육지가 지척인데 나만 섬에 갇힌 사람처럼 느껴지더라. 동굴 속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도 같고. 그러던 중 예정되어 있던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무산됐다. 어찌해야 하나 하다 그냥 작업실에서 한 번 전시해보자 싶어 일을 저질렀다. 현수막 하나 걸어 놓고 사람들을 맞았는데 힘들게 걸어오는 발걸음이 고맙고 재밌었다. 처음으로, 나만의 갤러리이자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는 유리문 달린 열린 공간을 가져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세상과 맞닿은 오픈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됐다.
스튜디오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사진 찍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 커피 한 잔 함께하다 가시는 분들도 있고, 간간이 지만 그림을 사시는 분들도 있다. 또 한 시간 넘게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실연의 아픔을 삯이다 넋두리처럼 본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신 분도 있었고. 작업하고 작업 소개하고 응원도 주고받고, 용기도 주고받으며 세상 가운데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는데 어느 정도는 의도대로 되는 것 같다. 작업할 때 집중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곤 하는데 보통 둘러보시는 분들이 있어도 상관없이 편히 작업하는 편이고, 가끔 정말 몰입해서 그리고 싶을 땐 나무 패널을 클로즈로 뒤집어두고 문 딱 걸어 잠그면 다시금 옛 작업실처럼 쓸 수 있으니 불편함은 없다. 물론 그런데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경제적인 문제도 좀 더 잘 풀리면 좋겠고, 작품을 포개놓지 않아도 되는 큰 벽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생기기도 한다.
무엇이 당신을 그림의 세계로 인도했나?
그냥 천직 같다. 미술 수업이 있을 때면 준비물을 살 때부터 어찌나 기대되고 떨리던지. 또 끝날 때는 얼마나 아쉬운지…. 언제부터라고 할 수 없는 어릴 적부터 내내 좋아했다. 특별활동 시간에도 항상 미술부였고. 아빠가 벽에 붙여둔 멋진 지휘자의 사진 그리고 그들의 음악, 또 그런 거 하면 굶는다는 엄마 말에 고이 접어둔 오빠의 그림 사랑 역시 나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가가 된 건가?
이탈리아에서 일러스트레이션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출판물을 만들었다. 너무도 당연한 듯 그림을 배우고 자연스레 직업으로도 연결됐지만 서른다섯에 작가가 되기까지는 일이 좀 있었다.
직접적인 계기가 따로 있단 말인가?
하나의 이유는 출판물을 만든다는 건 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수동적인 입장의 작업을 하는 건데 점점 내 생각, 내 표현 방식대로의 개인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선배 때문이다. 같이 작업실을 쓰는 선배랑 그냥 막연한 꿈 얘기하듯 언젠가 함께 전시하자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함께하지 해보지도 못하고 선배를 먼저 보냈다. 절망감, 허무함, 회의감에 휩싸여 한참 동안 시간을 죽이며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전시하면 좋겠다 했던 갤러리 앞을 지나는데, 불쑥 나 혼자라도 해봐야지란 생각이 들더라. 어디선가 선배가 보면 나를 기특해하겠지 싶은 마음도 생기고. 묵직하게 마음을 누르던 죽음이란 단어가 좀 가벼워지며 어차피 모두가 죽는 거, 산 동안 좀 제대로 살아보자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일 년 준비해서 서른다섯에 첫 개인전을 열고 작가가 되었다.
그 전시가 뒤태 전인가 보다.
그렇다. 첫 전시를 준비하며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나, 무얼 그려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버스 뒷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가만 보니 신발 굽도 제각각, 제스처도 자세도, 차림새도 다 다르더라. 각기 다른 자기 모습대로 존재하는데 그 다양성이 재밌고, 그 모습들로 유추되는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떠오르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뒷모습을 그렸던 첫 전시부터 지금까지 내 그림엔 사람이 기본이다. 표현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안엔 사람들의 모습,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들이 담겨있다.
특별히 애착 가는 그림이 있나?
나에겐 다 소중한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모나미 시리즈다. 좋자고 한 결혼이 처음에 너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와 같지 않으니 당연히 부딪칠 수 있는 건데 그땐 그게 그렇게 이해가 안 되고 상대방이 힘들게 느껴졌다.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고 불편한 마음을 어찌할 바 몰라 그저 손 가는 대로 낙서하듯 그려댔다. 그러다 차츰 가로, 세로, 양쪽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짧은 선들을 그리게 됐고 덧칠하며 차곡차곡 쌓아갔다. 처음엔 볼펜 한 자루를 쓰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호기심이 들더니 그 후엔 그저 무념무상, 나중엔 몰입도가 커지면서 더 큰 빈 곳을 채우고 싶은 생각만 가득해지더라. 볼펜 심하나 비워내기가 그리도 어렵더니 나중엔 하루 2자루 그러니까 8시간씩 꼬박 앉아 모나미 153 볼펜으로 검정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간을 통해 나를 비우지 않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 시간의 누적 없이 누군가를 단번에 안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깨달아지더라.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노동집약적 작품이자 고행이라고도 하지만 오히려 내겐 잡생각 없이 그림에 몰입할 수 있었던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깨닫는 게 있던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작업하고 싶나?
마라톤 뛰듯 작업하고 싶다. 힘들 땐 숨 고르기를 하며 천천히 달리더라도 꾸준히 뛰어 완주하는. 예전엔 필 받아 작업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나의 경우엔 그렇게 하는 게 결국은 작업을 지속할 힘을 약하게 하더라. 죽을 때까지 그림 그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꾸준함의 에너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냥 흘려보내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고 충실히 보내는 단단한 일상으로 기념되고 기록될 하루하루를 만들고 싶다. 과정의 소중함을 아는 작가로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