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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들이다.
누군가와 한 번에 친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별히 낯을 가리진 않지만 함께한 시간이 없으면 뭔가 내 사람 같지 않다.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편해지고 가까워지는 관계가 좋다. 대신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곁에 오래 두고 깊게 만난다. 작업도 그렇다. 단계 단계를 거치고 기다리며, 다듬고, 매만지고, 상상하고, 기대하고... 무른 흙이 건조되고 여러 차례 불을 만나 단단히 자기화될 때까지 그렇게 시간을 쌓으며 작업하는 게 좋다. 도자 작가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기다림. 어쩔 수 없는 그 시간이 좋다. 모든 과정이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힘들지 않다. 오히려 속도를 다투는 일보다 더 잘 맞는다. 작가 백승주는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과 조금 다르게 천천히 시간을 누리기로 했다.
전형적인 여자아이 취향이라는 ‘온리 핑크’ 컬러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오 년을 보냈다. 공예를 전공하고 입사한 디자인 회사는 모든 과정이 매우 스피디하게 이루어졌는데, 컴퓨터 다루는 일도 익숙했고 고정적 월급을 받는 회사 생활도 할 만했지만, 도대체 그 일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름을 인정치 않는 틀에 박힌 고정 관념도 싫고, 빠르게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 속도도 안 맞고, 분홍색은 이제 너무 지겹고. 나에게 맞는 공부를 더 해보자 했을 때 도예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더디 흘러가는 느린 템포로 시간을 길게 쓸 수 있는 작업. 빠른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무능력자 취급받는 세상에서 도예만큼은 시간과 정성 들임을 인정하는 ‘느림의 미학’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언급한 피에르 쌍소의 말처럼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며,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와 계절을 아주 천천히 아주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지 않나. 그렇게 그녀가 도자 작가의 시간을 살아간 지 이제 팔 년이 됐다. 남들이 회사에 있는 시간에 산책도 할 수 있고, 우아하게 작업실에서 차도 마시지만 사실 작업이 좋지 않았으면 진즉 접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전업 작가의 삶은 만만치 않다. 부모님과 딱 십 년만 해보기로 약속했는데... 이제 그것도 이 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 기대하며 기다려본다. 안타까운 상황을 보면 공감하고 안쓰러워하며 위로하고 싶고 낫게 해주고 싶은 이런 마음들을 표현할 작업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난겨울 개인전 후 슬럼프가 오긴 했지만, 작업에 쓰고 싶은 시간과 에너지도 여전히 가득하고. 파스텔로 드로잉하고 흙을 주무르면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지니까. 그만두긴 아직 이른 것 같다.
월세를 감당치 못하고 외곽으로 빠지는 작가들이 많던데 여전히 자리 좋은 홍대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좋은 건물주 덕분이다.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불안 불안하지만... 미술을 전공하셔서 그런지 나 같은 작가들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시다. 월세도 처음 금액에서 거의 올려 받지 않으셨고. 석사 졸업하고 첫 작업실로 들어왔는데 어느덧 꽉 채운 팔 년을 이사 한 번 안 가고 사용하고 있으니 정말 운이 좋은 거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땐, 나까지 작가 네 명이 공간을 나눠 썼었다. 함께 쓰다 보니 아무래도 공간이 좀 협소하게 느껴져서 나중에 개인 작업실 되면 너무 좋겠다 했었는데 두 명이 신당 창작 아케이드로 옮기고 남은 둘이 사용하다 그 후엔 혼자 쓰기도 또 누군가와 함께 쓰기도 하며 지금까지 이어왔다. 지하 공간이지만 대지 자체가 높은 곳이라 약간의 햇빛도 들어오고 학교에 있는 후배들 불러 같이 점심 먹기도 좋은 거리고, 날 좋을 땐 바로 앞 경의선 책거리를 산책할 수도 있다.
작업실을 유지하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현실적 어려움은 없나?
왜 없겠나.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사실 경제 문제다.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는 필수다. 강의하기도 하고, 컴퓨터로 편집 작업도 하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그런데 하다 보면 결국 주객이 전도돼서 한동안 작업도 못 한 채 작업 외적인 일에 치이게 되더라. 쉽지 않지만, 하고픈 일과해야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적당한 선에서 잘 타협할 수 있기를 말이다. 또 하나를 꼽자면 함께 하던 친구들이 점점 그만두는 거. 작업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한 고민을 하던 동료들 친구들을 자꾸 잃고 보니 외로움이 커진다. 순수 작업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버티기 힘드니까 학원을 차린 친구들도 있고, 출산과 육아로 자연스레 작업에서 멀어진 친구들도 있고... 그런데 신기한 게 작업만 시작하면 그냥 마냥 좋다. 아직은. 흙을 만지고 드로잉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 내가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양이나 시간을 정해두고 규칙적으로 작업하는 편인가?
규칙적으로 작업하는 게 참 힘들더라. 노력하는 데 잘 안 된다. 필받아 작업하는 스타일이라 어느 시간이다, 얼마큼 할 거다 정해 놓은 게 없다. 탄력받으면 밤새워 가며 작업하고 잘 안 풀릴 땐 작업실에서 차 마시고, 책 읽으며 마냥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작업 스타일 역시 전혀 계획적이지 않다. 일단 시작하고 과정 중 자연스레 변하는 것들을 쫓아 직관적으로 작업하는 편이다.
작업 속에는 고양이, 강아지, 토끼, 부엉이 등 동물이 늘 함께하더라.
첫 전시를 앞두고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결국 주변에서 찾게 되더라. 키우던 강아지 ‘아지’를 소재로 작업해보자 싶었다. 그때 아지가 많이 아팠고, 늘 미안한 마음이 있던 터라, 더 작업에 매달렸던 것 같다. 약을 먹이고 링거를 맞추며 어떻게든 곁에 오래 머물러주길 바라고 바라면서. 부모님도 꽤 긴 여행 중이셔서 아픈 강아지를 폭 싸서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했다. 아지를 만든 ‘같은 곳에 있어 주기’랑 달에서 불로불사약을 만든다는 ‘숲의 전령’ 속 토끼 조형 모두 그때 만든 것들. 그런데도 아지는 첫 전시를 보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갔다. 좀 더 살아 있어 달라는 마음을 담아 시작했던 작업이 결국은 아지의 죽음으로 애도의 기간이 된 거다. 사슴은 그때 만들었다. 켈트족 신화에 보니, 사슴이 영혼을 실어 나른다길래... 그렇게 첫 전시는 아지의 장례식처럼 되어버렸다. 아지를 새로, 나를 고양이로 표현해 떠나보내야 하지만 나를 위해 잡아두려고 하는 모순된 사랑과 그리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히구치 씨를 위해 만들었던 선물을 떠올리며 고양이 조형 작업도 했다. ‘푸른 기억, 같은 곳에 있어 주기’란 전시 제목처럼 슬픈 기억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 ‘한 방울의 눈물’로 인간을 위해 희생당하는 동물들의 아픈 사연을 이야기했다가 지난겨울 세 번째 개인전은 ‘My sweet thing’이란 제목처럼 고양이도 나도 치유되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던 것 같다. 전시 속 감정들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물들은 여전히 내가 가장 작업하기 좋아하는 소재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있고 표정이나 움직임이 매력적이다. 그들을 통해 사랑의 감정도 그립고 아픈 마음도 또,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도 전할 수 있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히구치 씨를 위한 선물은 뭔가? 첫 전시 때도 히구치 씨의 방이란 이름의 전시 공간이 있었던 거로 아는데...
교환학생으로 2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했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친구의 아버지가 바로 히구치 씨다. 그 집에 자주 가서 놀곤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어느 날 그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됐다. 뇌는 멀쩡하지만, 몸이 굳어가는 그런 병. 가족처럼 지내던 사이라 마음이 아팠다. 잠시나마라도 그분을 행복하게 해줄 선물을 하고 싶어 그가 좋아하던 고양이를 그려 선물해드렸었다. 세 마리 고양이를 키우는 냥이 사랑 지극한 집이었는데 그때가 아마 내가 고양이를 가까이에서 본 처음이지 싶다.
그때까지는 고양이 사랑이 지금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그때까지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관심을 둔 적도 없었다.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는 데 반해 오히려 고양이는 조금 무서워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히구치 씨네 고양이를 보며 좀 친근해졌고, 본격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건 한 6년 정도다. 친구 고양이를 잠시 맡아 기르게 됐는데 강아지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 이젠 쿠키, 초코, 초아 세 마리의 샴고양이랑 함께 사는 ‘냥이 집사’다. 털과의 전쟁이 정말 심각하지만, 고양이를 와락 안을 때의 그 행복감은 다른 거로 대체 불가다.
고양이의 매력이 뭔가?
무남독녀 외동딸인 데다 부모님이 맞벌이 셔서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홀로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이다. 외로움 덜 타는 독립적인 모습도 그렇고,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가야 마음을 열고 조금씩 한편을 내주는 성향도 그렇고 고양이랑 나랑 닮은 것 같아 더 마음이 가더라. 창가에 앉아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보면 혼자인 그 시간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하는 게 참 묘하기도 하고.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다가 자기 마음 내킬 땐 다가와 애교를 피우는 것도, 또 그때가 언제일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점도 재밌다. 게다가 표정이나 움직임, 자세가 매우 조형적이라 여러 해 고양이를 그리고 도예 작업을 하면서도 순간순간 새로운 매력을 재발견하게 된다. 살짝 도도하게 뻗는 다리 모양이라던가, 우아한 스트레칭 같은 기지개라던가...
두 번째 전시 ‘한 방울의 눈물(Animal, anymore)' 얘기 좀 더 들려 달라.
동물자유연대의 영상을 보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졌다. 정말 옥살이시키듯, 꼼짝 못 하게 토끼들을 틀에 가두고 마스카라를 바르고 또 바르고... 사람들에게 안전한 화장품을 만든다는 명목하에, 화장품 하나가 완성될 때까지 토끼 눈에 삼천 번 이상 테스트를 하더라. 토끼 눈은 빨갛게 충혈되다 결국 시력을 잃고. 사랑받으며 잘 살아가는 동물도 있지만, 번식력이 좋다고, 또 성격이 온순하다는 등의 이유로 끔찍하리만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학대받고, 희생당하는 동물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동물들의 생명성과 존엄성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고, 묻고 싶었다. 동물자유연대와 같이 기획하고 인간 때문에 흘리는 동물들의 눈물을 작품 속에 담았다. 예쁘고 귀여워 보이는 모습들이지만 작품에 다가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염없이 울고 있거나, 눈이 없는, 결코 예쁘지만은 않은 모습들이다.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초등학교 때 찰흙 만들기 했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텐데, 판성형이라고 해서 밀대로 흙을 밀어 납작한 판으로 만들어 작업하기도 하고, 코일링 성형이라 해서 손바닥으로 흙을 길게 밀어 얇은 가래떡처럼 만들어 쌓아가는 방식으로 작업하기도 한다. 칼이나 주걱 같은 소도구로 매끈하게 만들고 원하는 느낌에 따라 손의 터치를 주기도 하고. 그 후엔 정말 기다림의 연속이다. 2주 동안 건조해 수분을 빼고 850도 정도에서 초벌하고, 물감을 이용해 그리거나 유약에 담그거나 뿌리는 시유 과정을 거쳐 색을 낸다. 말렸다가 다시 1250도 정도 열로 재벌 하며 도자기를 구워 자기화시키고 그 후엔 금을 덧바르기도 또 유약을 레이어 하며 많게는 다섯 번까지도 가마 작업을 한다. 한 번 가마에 들어가면 보통 14시간 이상 구워주는데 조형 안에 기포가 들어가면 굽는 과정에서 터지기 때문에 꼼꼼하게 몰드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꼬박 1~2달 이상의 시간을 들여 기다려야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워낙 변수도 많고 우연의 요소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가마에 들어간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늘 떨리고 기대하는 마음이 든다. 물감은 그렇지 않지만, 유약의 경우엔 요변이라 해서, 칠했을 때 색과 구워서 나온 후의 색이 달라서 회색을 뿌릴 때 빨강으로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며 작업하기 때문에 가마를 열기까지 내가 작업했던 게 어떻게 나올지 정말 알 수 없다. 똑같은 모양의 작은 고양이 오브제들은 슬립 캐스팅이라는 기법으로 만드는데, 석고로 만든 원형 틀에 흙물을 넣었다가 7분 기다려 물을 빼고 10분 정도 말렸다 뗀 뒤, 초벌과 재벌구이 과정을 거치면 기계 없이도 똑같은 모양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앞으로 더 해 보고 싶은 것이나, 계획들이 있나?
동화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짧은 영상이나 애니로 표현해보고 싶기도 하고. 나이가 먹어가며 드는 생각인데 내가 했던 모든 일이 그때 당시엔 다 관계없는 듯 보여도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A란 일은 B할 때 도움을 주고, B라는 일은 이다음에 C하면 잘 활용할 수 있고... 쓸데없는 경험이나 시간은 없는 것 같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핑크색만 써가며 캐릭터 만드는 일을 했던 첫 직장의 경험, 아이들을 가르치며 얻은 생각들이 동화책 만들 때, 제법 괜찮은 토대가 되어 줄 것 같다.